
사실 놀라웠다. 영화 만들 때 조차도 "난 사실 스타워즈 팬이라능. 스타 트렉 그게 뭐임? 그거 먹는거임? 우걱우걱" 하던 J.J. 에이브람스가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펼쳐보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어쩌면 (익히 알려져 있듯) 그가 트레키가 아니라는 점이 오히려 <스타 트렉>의 새로운 극장판이 정말로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트레키를 위한 영화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그의 장담에는 보다 많은 관객을 끌어오려는 제작사와 감독의 경제적 욕심이 1g 정도 들어있었을지는 몰라도,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트레키가 아니다. 그는 스타 트렉을 잘 모른다. 그러면 정답은, 스타 트렉의 세계를 뒤집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는 것이다. 동시에 그가 가장 잘 하는 것 - 재미있게 만들기 - 을 하는 것. J.J.는 역시나 노련했다. 그는 자신의 최대의 약점과 최상의 강점을 동시에 잡아낼 줄 아는 현명함을 가졌다.
<스타 트렉>을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스타 워즈>같은 대형 우주 SF물과 차별화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낙관론이다. 자본주의, 개인주의와 더불어 가장 미국적인, 그리고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들 수 있게 한 이 낙관주의야말로 <스타 트렉>을 다른 우울하고 어두운 메세지를 설파하는 SF물들과 차별화시키고, 나아가 가장 인기있는 SF물이 되게 만든 <스타 트렉>의 핵심 요소다. 인간과 평화, 진보에 대한 끝도 없는 낙관주의와 그 사이를 비집는 화이트 코미디는 그 시리즈의 어떤 인물도, 어떤 장면도 놓칠 수 없게 만들고는 했다. 트레키도 아니고 <스타 트렉>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지만 <스타 트렉>의 몇몇 클립들을 볼 때의 느낌은 항상 그래왔다. 따뜻함. 뭐 윌리엄 샤트너가 나와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
그런데 2007년 봄인가에 J.J. 에이브람스가 이 영화의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을 때, 기대와 난감함이 동시에 머리 속에서 교차했다. 누구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물론 <
스크린에 뿌려진 것만 보자면, 분명 J.J. 에이브람스는 <스타 트렉>의 세계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다소 복잡한 시공간 개념이 나오고 그것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더 복잡한 점이 J.J.스럽기는 하지만, 그는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 프리퀄을 만들며 <스타워즈>의 세계를 통째로 뒤엎어버린것과는 달리(<에피소드 3>은 그나마 <스타워즈>의 세계관에 가깝지만, <에피소드 1>과 <에피소드 2>로 미루어 봤을 때는 과연 감독 자신조차 먼 과거의 우주에 대한 명확한 세계관이 정립되어있었는지가 의문이다), <스타 트렉> 특유의 아우라를 결코 저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로서 정립되어 있기에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기 힘들지만(굳이 표현하자면 '스타트렉스럽다'정도?), 분명 트레키와 초보 탑승객 둘 다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그리고 원작의 프리퀄로서의 소임을 다하려는 책임감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스타 트렉>은 기본적으로 'SF 액션 영화'는 SF와 액션이라는 기본 요소에 굉장히 충실하다. 우주선들의 싸움은 아찔한 스케일과 낭만적인 영상으로 광활한 우주를 조용히 응시하며, 그 유명한 '드릴 미션'의 수직 강하 장면은 우주선에서 떨어질 때부터 드릴을 파괴하는 그 순간까지 수많은 변수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며 한 순간도 긴장을 놓치지 못하게끔 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스타워즈>와는 달리 그 전투들이 단순히 쿵작거리는 한판 쇼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또한 오우삼의 허세도 아니다. 오히려, J.J.는 관객들이 주인공들과 같이 우주선에 탑승하기를 안내한다. 커크와 함께 드릴에 떨어져 같이 싸우고, 그 위기와 긴박함을 같이 느끼기를, 그리고 우주의 신비함을 같이하기를 재촉한다. 우주 안에서의 조용함, 대기권을 통과할 때의 불타오름, 낙하산을 펼칠 때의 아픔, 벌컨이 멸망할 때의 슬픔. 하나하나 세세하게 배려된 디테일 안에서 관객은 어느새 USS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이 되어 있다.
사실 이런 영화적 요소들은 할리우드의 완벽에 가까운 시스템을 생각해 보았을 때 크게 놀라운 점은 아니다. 액션 영상이야 이미 노하우가 축적될 대로 축적되어있고, 각본 역시 J.J. 에이브람스와 데이먼 린들로프의 프로듀싱 아래 <아일랜드> 등을 쓴 알렉스 커츠만, 로베르토 오씨 등의 수석급 각본가들이 참여했고, 동시에 할리우드 시스템까지 고려해보면 1억 5천만달러의 '돈지랄' 영화에 이 정도의 영화적 퀄리티가 안 나온다면 그게 오히려 욕먹을 일일 것임엔 분명하다. 사실 <스타 트렉>은 엄청난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세계관의 스케일로는 <스타워즈>보다 소소하고, 이야기의 세련됨으로는 <아일랜드>에 못 미치며, 철학적으로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만큼 깊지는 않다. 액션은 오히려 그의 전작인 <미션 임파서블 3> 때가 훨씬 역동감있었다.
그러나 <스타 트렉>은 단순히 '할리우드 웰메이드 SF 액션영화'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지점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J.J. 에이브람스의 공이다. 특히 TV드라마의 향기가 짙게 묻어나는 장면들이 매우 독특하면서도 따뜻한데, 몇몇 유머 요소들(특히 스타크가 우후라의 이름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고 외칠때 등)은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인간적 감성이 스케일의 웅장함에 짓눌리지 않게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준다. 대놓고 웃기려고 드는 게 아니라 각각의 캐릭터의 색깔을 명확히 되살리면서 작은 웃음을 자아내는 <스타 트렉>의 유머 코드는 바로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낙관적 분위기에 다름 아니다. 이 작은 웃음들은 관객을 웃음짓게 하고, USS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들을 웃음짓게 하며, 나아가 커크 선장이 우주 전체의 평화를 바라게 하는 - 그는 코바야시 테스트 때도 패배한 적들을 구해주는 자비를 베풀고, 네로에게 역시 마찬가지 제안을 한다 - 낙관적 세계관을 완성시키는 가장 작지만 큰 원동력이 된다. <스타 트렉>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은 이것에 있다. 그들은 결코 다스베이더와 시스처럼 슬픔과 분노에 가득찬 존재들이 아니며, 제다이처럼 밥맛 떨어지는 정의의 구현자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행복하고 싶어하는 지극히도 소시민적인 꿈을 가진 우주의 시민들이다.
J.J. 에이브람스의 <스타 트렉>은 그런 영화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나 적들이나 결코 특별히 대단한 능력을 가지거나 엄청난 야망을 가진 존재들은 아니다. 약간의 의견차도 존재하고, 약간의 암투도 존재하며, 다들 조금씩은 모자란 구석이 있고(특히 존 조! 완전 잘생겼어 ^^), 조직의 위계 질서도 있다. 한둘의 천재들이 나타나서 전체 질서를 뒤흔드는 여중생들이 좋아할만한 파격은 없지만 그것이 오히려 <스타 트렉>의 세계가 다른 SF물에 비해 훨씬 안정감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편안하지만 재미있는 영화, 그러면서도 소소한 디테일과 나름의 철학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좋은 영화를 오랜만에 만났다. J.J., 얄밉다. 천재는 천재인듯.


덧글
지기 2009/05/10 01:45 # 답글
정말 최고였습니다... 와...정말...
copacetic 2009/05/10 20:59 #
맞아요 최고예요 ㅎㅎㅎㅎ
배트맨 2009/05/11 01:18 # 답글
제 생각에도 J.J. 에이브람스는 천재가 맞는 것 같습니다. 기대를 저버리는 법이 없더군요. 앞으로 TV는 얼씬대지도 말고, 할리우드에서만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
copacetic 2009/05/11 11:16 #
상상을 초월하는 구석이 있죠 ^^ 클로버필드 때 제가 받은 충격은 정말 엄청났었던-_-;; 평론가들이 좋아할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분명 대중문화에 큰 획을 긋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배트맨 2009/05/11 11:24 #
딴지는 아니고요.. 지난 두 작품도 그렇고, 이번 신작도 그렇고 북미 평단의 반응은 좋은 편입니다. 특히 <스타 트렉>은 관객들만큼이나 열광하고 있더군요. ^^*
copacetic 2009/05/11 13:10 #
아, 제 말은..ㅋㅋㅋ "예술영화만이 영화닷"이라고 외치는 분들이 그다지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해서요 ㅎㅎ;;